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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장의 탄생' 전쟁 속 생존형 창업기

저자는 여사장의 등장이 일제강점기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독립운동이나 국가 동원 등으로 인해 남편이 부재했던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으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1949년 상업 종사 여성은 8만1204명에 불과했지만, 전쟁 중인 1951년에는 59만3264명, 1952년에는 59만7257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불과 3년 만에 7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전쟁과 남성의 부재가 여성의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여사장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음식 조리와 의류 제작이 대부분이었다. 난전에서 전이나 국밥을 만들어 팔거나 길모퉁이에 재봉틀을 놓고 즉석에서 옷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일부 여성들은 미용 기술을 활용해 파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제활동을 이어갔다. 이처럼 전쟁 중에도 상당한 수익을 올린 여성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여성의 역할은 가정 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들은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사, 출산, 육아 등의 역할을 떠안아야 했고, 이러한 부담은 여성 기업인들의 사업 확장을 어렵게 만들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여성 경영인’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재벌기업이 부상하면서 재벌가 여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났고, 대표적으로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과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있다. 이들은 남성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도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여성 기업인의 입지를 넓혔다.
최근에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창업이 증가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의 여사장들이 생계를 위한 자영업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현재의 여성 창업가들은 자아실현과 성장을 목표로 창업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적 대우와 지속적인 자기 증명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창업을 고려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쇼핑몰 등의 기술적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여사장의 탄생』은 한국 경제사에서 간과되어 온 여성 경제인의 역사를 조명하며, 오늘날 여성들이 기업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도전과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단순한 생계 유지에서 벗어나, 자아실현과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